재정보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국어사전적으로는 상거래 내지는 중요한 재정사무를 맡은 사람이 업무수행중 손해를 끼쳤을 때에 그에 대한 신속한 보상을 하기 위한 조치라고 정의되며, 한국정서상 단어 자체가 상당히 무거운 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민절차에도 이 단어가 등장합니다. 시민권자가 배우자를 초청하거나 기타 가족관계에 의해 영주권을 신청해 주면 반드시 따라 들어가는 서류에 '애피데이빗 오프 서포트' (Affidavit of Support, I-864)’라는 것이 있습니다. 달리 번역할 단어가 없어 흔히 재정보증서라고 합니다. 초청자의 재정능력이 부족할 경우 공동보증인을 추가로 세워야 하고 이때도 동일한 I-864를 제출하기 때문에, 시민권 또는 영주권을 이미 받으신 한인분들도 종종 부탁을 받으시는 줄 압니다. 그러면 재정보증의 한국에서의 어감이 떠올라 도대체 무슨 부담을 지는 것인지 두렵고 막연한 것이 사실입니다.
I-864의 기본취지는 미국에 들어온 영주권자가 공적부조(Public Charge), 즉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혜택을 받아 미국재정에 피해를 주는 일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이민법적으로 보면 재정보증서(I-864)에 서명을 한다는 것은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일종의 계약에 서명하는 것입니다. 즉 이민자가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 정부에 보조를 신청하지 않고도 최저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스폰서가 도움을 주겠다고 법적으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 계약에 의해 이민자는 보증인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구할 수 있고, 만약 정부로부터 직접 도움을 받았다면 정부는 보증인에게 이를 갚아달라고 청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보증의무는 이민자가 시민권을 받거나 사망시 또는 영주권을 포기할 때까지 존재합니다. 그리고 보증인은 주소를 옮기게 되면 이를 이민국에 알려야 할 의무도 있어서 이행하지 않으면 수백에서 최대 5,000불까지 벌금을 낼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들으시면 이거 절대로 서명해서는 안될 서류구나 하고 생각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규정과 달리 현실에서는 이 의무가 실상 그렇게 엄격하지는 않습니다. 우선 재정보증을 부탁했던 이민자가 나중에 보증인에게 정색을 하며 지급요구를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 것임은 인지상정입니다. 이민국에서 이 규정이 현실화할 것을 예측하는 유일한 상황은 배우자초청후 이혼한 경우입니다. 이혼을 해도 시민권자는 전배우자에게 계속 재정보증의무를 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부의 공적부조를 받은 경우에 대해서도 관련규정은 그에서 제외되는 사례를 꽤 넓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푸드스탬프나 어린아이에게 무상으로 나오는 우유, 쥬스 같은 WIC 프로그램, 그리고 일리노이주의 올키즈 프로그램 같은 것은 이민자가 혜택을 받더라도 이를 통해 이민자가 Public Charge 되었다고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 정부가 이를 재정보증인에게 청구하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이민변호사협회의 얼마전 조사에 의하면 정부기관 등에서 이를 실제로 청구한 사례는 코네티컷주 한주였던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I-864를 이민국에 제출할 때 스폰서는 최근 1년치 소득세 보고서의 사본을 동봉해야 합니다. 최근에 완화되기 전에는 최근 3 년치 세금보고서를 제출해야 되었습니다. 사실 상당히 중요한 정책 변경이 있었던 것입니다. 절세를 위해 소득을 줄여 보고하는 분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보니, 과거에는 가족을 초청하고 싶어도 3년동안이나 IRS에 보고된 소득 금액이 작아서 초청을 하지 못하거나 부탁을 받은 공동보증인에게도 큰 부담이 되어 서류를 제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재정보증인이 보고해야 하는 연간소득액도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습니다. 본인과 이민자의 부양가족수에 비례한 최저생계비의 125% 이상이면 되는데 예를 들어 총 인원이 4명이라면 2016년 세금보고에 연소득을 3만불 남짓 넘게 보고했으면 됩니다. 이상 오늘은 가족초청시 재정보증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아무쪼록 재정보증인의 규정상 의무와 현실적인 상황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