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잘 알려진 명품 브랜드인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은 구두의 윗부분부터 밑바닥까지 단색으로 된 하이힐을 출시 했는데,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이하 "루부탱")은 입생로랑의 빨간색 단색 구두가 2008년에 미국특허상표청(이하 “USPTO”)에 등록 되었던 자신들의 상표를 침해 했다며 뉴욕 남부 연방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루부탱의 등록된 상표는 밑바닥이 빨간색으로된 하이힐인데, 입생로랑의 하이힐은 구두 윗부분부터 밑바닥까지 단색으로 되어 있었으며, 그 중 빨간색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심은 루부탱의 상표가 보호받을 수 있는 상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입생로랑의 손을 들어줬는데, 2심은 루부탱의 상표가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는 했지만, 그 보호의 범위를 제한하면서 입생로랑은 항소심에서도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색으로 된 구두 밑바닥을 상표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또한, 구두 밑바닥의 색깔이 상표법으로 보호 되는 상표라고 결론을 내린 근거는 무엇일까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개념이긴 하지만 미국의 상표법에는 trade dres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Trade dress란, 제품이나 서비스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말합니다. 예컨대, 제품의 포장이나 디자인, 제품의 특징, 혹은 제품의 여러가지 특징이 조합된 것이 trade dress에 해당합니다. 만약 trade dress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낸 업체를 구별 및 식별할 수 있게 해준다면, 보호를 받는 상표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Trade dress의 대표적인 예는 코카콜라의 유리병 모양입니다. 코카콜라의 유리병 모양은 보호를 받는 trade dress인데, 독특한 모양 때문에 병만 보더라도 그 제품을 만든 업체가 코카콜라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루부탱 구두의 빨간색 밑바닥은 보호받을 수 있는 trade dress에 해당할까요?
루부탱 케이스의 2심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쟁점 중 하나는 루부탱의 상표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상표인가 하는 것인데, 2심은 연방 대법원 판례(Qualitex Co. v. Jacobson Products Co., 514 U.S. 159, 이하 Qualitex)에 근거하여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만, 등록된 상표 그 자체로는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상표 보호의 범위를 구두의 빨간색 밑바닥이 구두 윗부분의 색깔과 대조를 이룰 때에만 보호를 받을 수 있다라고 판시하면서 보호의 범위를 좁혔습니다.
루부탱의 구두 밑바닥이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은 Qualitex에서 어렵지 않게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Trade dress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해당 trade dress가 식별력(distinctiveness)을 획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에 따라 결정되게 되는데, Qualitex에서 연방 대법원은 색깔이 하나 일지라도, 회사의 제품을 다른 제품으로부터 구별하고, 제품을 만든 회사의 제품인지를 식별할 수 있게 해 준다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trade dress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기 떄문입니다. 즉, 색깔이 하나라도 식별력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따라서, Qualitex 판례에 따르면, 루부탱 구두의 빨간색 밑바닥도 단색이지만, 이 단색이 식별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대상에 포함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빨간색 구두 밑바닥이 실제로 식별력이 있는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상표가 식별력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두가지 테스트 중 하나를 통과해야 합니다. 하나는 inherent distinctivenss (내재하는 식별력)이고 다른 하나는 acquired distinctiveness (획득된 식별력)입니다. 미국의 연방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제품의 디자인이나 형태는 절대 내재하는 식별력을 가질 수 없고, 획득된 식별력이 반드시 증명되어야만 식별력에 대한 테스트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제품의 디자인이나 형태 그 자체로는 어느 회사의 제품인지 알 수 없고, 소비자들의 학습을 통해서만 어느 회사의 제품인지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루부탱이 구두 밑바닥이 빨갛게된 하이힐을 만든다는 사실을 모르는 소비자가 루부탱의 구두를 본다면, 루부탱의 구두인지 아닌지 절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빨간색 밑바닥을 가진 하이힐이 루부탱의 구두라는 사실은 광고 등을 통해서 학습된 결과로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루부탱 케이스의 2심 법원은 루부탱 구두의 빨간색 밑바닥이 획득된 식별력이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획득된 식별력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여러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요소에는 광고 지출, 언론 보도, 판매 성공 등이 포함됩니다. 법원은 이러한 각각의 요소에 대해 광범위한 증거(입센로랑의 CEO도 식별력에 대해 인정함)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획득된 식별력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루부탱 하이힐의 빨간색 밑바닥이 획득된 식별력이 있다면, 입센로랑의 빨간색 단색 구두는 루부탱의 상표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2심 법원은 빨간색 밑바닥이 구두 윗부분의 색깔과 대조를 이룰 때에만 식별력이 있고 판시하면서 상표가 보호되는 범위를 좁혔습니다. 이는 법원이 윗부분과 구두 밑바닥 빨간색 그 자체보다는, 빨간색과 구두 윗부분 색깔 사이의 대조가 식별력을 주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인데, 실제로 루부틴이 실시한 소비자 설문 조사도 법원의 결론과 일치했습니다.
입센로랑의 구두는 구두 윗부분의 색깔과 대조를 이루지 않는 단색 구두이므로, 법원은 루부탱의 상표가 보호를 받는 상표이긴 하지만, 입센로랑의 구두가 루부탱의 상표를 사용했다고 볼 수 없고, 또 루부탱의 상표와 혼동을 일으킬만큼 비슷하지도 않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루부탱의 케이스를 통해서 상표의 보호의 범위는 그것이 설령 USPTO에 등록된 상표라고 할지라도 결국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따라 달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표 침해를 주장하는 측에서 이미 등록된 상표라는 주장을 하더라도, 판례와 함께 더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