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이사를 가면 새로운 주소지를 관할하는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신고를 하면서 자연스레 국가에 주소변경신고를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주민등록법 위반이 실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장관과 같은 고위직공무원 후보의 청문회입니다. 주로 자녀교육을 위해 학군이 좋은 친척집 등으로 주민등록을 옮겨 놓는 이른바 위장전입 때문입니다. 개발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큰 도덕적인 가책없이 한 이러한 주민등록법 위반에 대해, 고위공직자에게는 높은 기준을 적용하여 많은 후보들이 낙마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반인은 실제로 걸린다 하더라도 과태료 조금 내면 되니 걱정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분명히 옳은 것은 아니지만 현실은 그렇습니다.
미국에서는 특별히 이 주소변경신고를 강제하지 않아도 대개 주택매매과정에서 필요한 transfer stamp 를 통해 전입자의 정보가 시청에 간접적으로 보고됩니다. 자동차 등록스티커를 통해 주소변경신고가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은, 영주권 유무와 관계없이 시민권을 받기 전에는, 주소변경시 사후보고의무가 있습니다. 즉 시청 등에의 보고 외에 국토안보부에 이사 후 10일 이내에 AR-11 이라는 양식을 작성해 주소변경을 보고하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AR-11 양식은 한장짜리 간단한 서류로서, 전주소와 변경주소, 그리고 미국에 마지막으로 입국한 시기와 장소를 적으면 되는 간단한 서류입니다. 인터넷(www.uscis.gov)으로도, 전화(800-375-5283)로도 보고할 수 있고 또는 AR-11을 출력작성해서 이민국으로 보내면 됩니다. 이 서류는 가족 중 한사람이 대표로 할 수 없고 모든 식구가 따로 제출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어길시에는 30일 이내의 징역이나 200불 이내의 벌금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과태료 수준이니 그건 괜찮은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즉 규정에 따르면 신고미이행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만하지 않거나 또는 고의에 의한 경우라고 판단되면 추방도 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한 신문에 이 주소변경을 하지 않아 영주권을 빼앗기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 변호사사무실마다 신분을 걱정하는 전화가 폭주한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지키지 않아서 국가에서 강행을 포기한 법규를 우리는 사문규정이라고 합니다. 이민국의 이 주소변경신고의무 역시 실제에 있어서는 거의 사문규정화 되어 있었습니다. 입법적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1980년 이전까지는 모든 외국인은 해마다 1월에 현재 거주지를 계속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현재의 제도로 바뀐 지난 수십년동안 실제 이법을 적용하여 벌금을 부과한 사례도 거의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민국에 비자나 영주권신청서류를 제출해서 기다리는 도중에 이사한 경우라면 서류가 잘못 배달되는 것을 막기 위해 꼭 신고하라는 정도만 강조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특히 9/11 사건 이후 미국의 외국인 관리가 강화되면서 이 규정이 보안당국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민법의 다른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주소변경의무 불이행을 기소목록에 추가하는 사례가 일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법을 위반한 것이 적발되었을 때 가장 많이 하는 항변이 다른 사람들도 지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민국도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규정위반 하나만으로 추방결정을 강행할 이민판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확실한 것이란 없습니다. 이민국과의 입장에서 늘 약자인 이민자는 위험이 있다면, 그리고 이행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 법을 지키는 것이 가장 현명합니다.
혹시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은지 십수년이 지나가는데 한번도 이사할 때 신고한 적이 없었다고 걱정하시는 분이 있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수차례의 주소에 대해 각각 신고를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가장 최근 것으로 보고하시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사한 지 10일이 지났더라도 적당한 날짜를 넣어서 보고하시기 바랍니다. 외국인의 소재지를 파악하려는 보안당국의 입장과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미국헌법정신이 충돌하는 미묘한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