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를 보았습니다. 미국 이민이 처음으로 본격화된 70년대에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나와 10년을 일한 뒤,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아칸소주로 이주하여 병아리감별을 하며 농장을 일구는 80년대의 한인 1세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곧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영화 미나리를 인상 깊게 보면서, 이 영화는 아메리칸드림을 소재로 한 미국 영화인 것이 분명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나라가 어디이든 간에 현세대가 부모님 세대에 보내는 헌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국어로 대부분 대사를 하는 영화라서, 영어 자막이 미국 관객들을 위해 제공됩니다. 들리는 말과 보는 자막을 동시에 받아들이다 보니 새삼스럽게 다가온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극중 아내는 미국 닉네임을 따라 자막에는 늘 “Monica”라 쓰여 있었고, 남편은 아내를 늘 “지영 엄마” 라고 부릅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진짜 한국 이름은 영화가 끝나도록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고, 영화에 대한 소개에도 아내의 이름은 모니카일 뿐입니다. 맞벌이하는 부부의 아이들을 위해 배우 윤여정 씨가 분한 외할머니가 한국에서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름은 극 중에서 한 번도 불리거나 알려진 적 없이 그저 “할머니”입니다. 그녀의 한국 이름은 오로지 영어 자막 속에서만 등장합니다. “순자”입니다. 감독 정이삭씨의 실제 경험에 근거한 영화임을 생각해 보면, 순자 씨와 그의 딸 지영 엄마의 헌신은 결국 수십년 뒤에 미국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한국계 이민사회를 가능하게 만든 미나리 씨앗 같은 것으로 읽힙니다.
지난주 조지아 애틀랜타에서 아시안 혐오 범죄로 추정되는 20대 백인 청년의 권총에 한국계 이민자 4명을 포함하여 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희생자 중 미국인 2명, 중국계 2명은 사건 당일 이름이 공개된 반면, Asian Women으로 추정된다는 한국계 4명의 이름은 사흘이 지나서야 언론에 공개되었습니다. 네 분의 한국 이름은 박순정, 유영애, 김현정, 그리고 김”순자”입니다. 아시안계 미국 이민자는 원래 그리고 여전히 미국에서 존재감이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중년 이상의 여성입니다. 게다가 한국 여성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일 뿐 우리의 언어습관 때문인지 결혼 후에는 아예 이름을 잃어버립니다.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Stop Asian Hate 움직임에도 그러한 소외감에 대한 의사표시가 중요한 동기가 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한인사회 일각에서는 중국에 대한 미국인들 불만의 피해를 오히려 한국 사람이 받고 있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저 역시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를 바꾸는 큰 힘은 분열이 아니라 연대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책임을 다하고 온전히 기여하며 그 자부심을 가지고 이 사회에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는 더 나은 미주 한인사회를 꿈꿉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헌사는 이것입니다. 미국에 이민나와 캘리포니아, 시카고 그리고 저 남부의 이름 모를 시골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자식과 가족 뒷바라지하다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순자”씨, 그리고 어머니들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머리 숙입니다. 당신들로 인해 미주 한인사회가 여기까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