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한국에서 연애를 하던 시절, 극단 산울림에서 오랫동안 공연하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본적이 있습니다. 혹시 독자분중에 이 연극을 보기 전의 저처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가 높을 고자를 쓰는 한자어인지 생각하는 분이 있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2년 아일랜드의 극작가 새뮤얼 베케트가 쓴 연극으로 53년 초연이래 20세기 내내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해석으로 수없이 많이 공연된 유명한 작품입니다. 한국에서는 이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던 1969년부터 무려 40년간 임영웅선생이 계속해서 연출하여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고도(Godot)’는 극중 사람의 이름입니다. 주인공 두사람은 한 나무아래에 앉아 본적도 알지도 못하는 고도라는 사람을 이유도 없이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허탄한 농담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냅니다. 고도가 내일은 꼭 찾아올 것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연극은 끝이 나지만 청중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일도 그들은 고도가 그 다음날 찾아올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될 것임을 말입니다. 고도라 이름붙혀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지만, 끝내 고도는 오지 않습니다. 하여 작품 속의 고도는 결국 어떠한 사람이 아닌, 오랫동안 바래온 꿈일 수도, 아니면 종교적인 구원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지 않을 고도를 막연히 기다리는 주인공의 수수께끼 같은 대사들 때문에 부조리극이라고 불립니다.

이민개혁을 이루어낼 것이라 믿었던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개혁 추진중에 힘을 잃은후, 의회에서 공화당의 강한 반발속에 지지도를 떨어뜨린채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지난 8년 오바마임기중 포괄적이민개혁이라 불리우는 조치를 기다린 수많은 합법이민자, 신분미비자에게는 지난 8년이 꼭 고도를 기다리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새로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반이민정책의 시행을 공언하고 있습니다. 이민변호사협회를 포함한 각종 친이민단체에서 목소리를 내며 애를 쓰고 있지만 정권교체 초기인데다가 미국주류 백인들이 선거를 통해 보여준 의사표시가 남아 있는 시점이라 현재로서는 역부족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주권을 기다리거나 사면을 기다리는 것이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아득하고 마치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부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려운 비즈니스 상황 속에 악전고투하다가 최근 영주권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간 분의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희망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면을 빌어 감히 말씀드립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정권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민자 여러분, 기다리던 고도는 머지않아 올 것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기 바랍니다.